6년을 미룬 사무실 계약, 이틀 만에 결정한 이유
카페와 고객사 회의실을 오가며 컨설팅하던 킵코드가 천호역에 작은 사무실을 열었습니다. 오래 망설인 결정을 이틀 만에 끝낼 수 있었던 건, 조건을 먼저 적고 불안을 목록으로 바꾸는 방식 덕분이었어요.
이주희#킵코드 스토리
2026년 봄, 킵코드에 처음으로 '주소'가 생겼어요. 천호역 근처 신축 건물의 6평짜리 사무실이에요. 사무실을 얻겠다고 마음먹은 날부터 계약금을 보내기까지 걸린 시간은 이틀이었어요.
그런데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6년이 걸렸어요. 오래 망설이던 일을 순식간에 끝낼 수 있었던 건, 망설이는 동안 기준이 이미 다 정리돼 있었기 때문이에요. 큰 결정을 앞둔 대표님들께 참고가 되길 바라며 그 과정을 정리해 볼게요.
사무실 없이 컨설팅한 6년은 어땠을까요?
킵코드는 2021년에 시작했어요. 지난해 10월까지는 본업이 따로 있었고, 컨설팅은 퇴근 뒤와 주말에 했어요. 평일 저녁이 어려운 대표님들은 주로 주말을 고르셨으니, 한 주를 통째로 쉬는 날은 거의 없었어요.
첫해에는 모든 컨설팅이 온라인이었어요.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라 화면을 공유하며 대표님들의 업무를 함께 들여다봤죠. 충분히 효율적인 방식이었지만, 마주 앉아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있었어요.
2023년부터는 직접 만나는 일이 늘었어요. 가까운 대표님들이 회의실을 내어 주시거나 사무실 한쪽을 비워 주셨고, 먼저 찾아와 주신 분들도 많았어요. 카페, 고객사 회의실, 누군가의 책상. 노트북을 펼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컨설팅 자리가 됐어요.
그사이 사는 곳도 부평에서 목동, 의정부로 바뀌었어요.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동안 식사는 단백질 쉐이크로 대신하는 날이 많았고, 미팅 사이에 쉴 틈을 계산하는 게 습관이 됐어요. 저녁이면 어깨와 허리가 먼저 지쳐 있었고요.
그때는 이런 바쁨을 열심히 사는 증거라고 여겼어요. 지금 돌아보면 바쁘게 움직이는 것과 나를 챙기지 않는 것을 구분하지 못했던 시간이었어요. 몸이 버티지 못하면 결국 일도 같이 흔들린다는 걸, 6년이 지나서야 받아들였어요.
사무실은 왜 그렇게 오래 미뤘을까요?
"이제 사무실 하나 내셔도 되지 않아요?" 만나는 분마다 한 번씩은 해 주신 말이에요. 그래도 쉽게 움직이지 않았던 이유는 하나였어요. 저에게 사무실은 공간이 아니라 매달 빠져나가는 고정비를 감당하겠다는 약속이었거든요. 그 약속을 지킬 준비가 됐는지, 6년 동안 계속 스스로에게 물었어요.
답은 2026년 3월에 갑자기 나왔어요. 그리고 답이 나온 뒤에는 미룰 이유가 없었어요.
조건을 먼저 적으면 결정이 왜 빨라질까요?
처음 알아본 곳은 잠실이었어요. 가깝게 지내는 디블러 대표님의 사무실이 근처라, 일이 막힐 때 잠깐 들러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었죠. 그런데 직접 가 보니 오래되고 어두운 건물이 많았고, 주차가 어려웠고, 가격은 예산을 넘었어요. 한두 가지만 어긋났다면 타협했을 텐데, 거의 모든 게 맞지 않았어요.
그래서 매물을 더 보기 전에 종이를 꺼냈어요. 어떤 곳이 '좋은 곳'인지 감으로 고르지 않고, 반드시 채워져야 하는 조건부터 적었어요. 모두 일곱 가지였고, 묶어 보면 네 갈래였어요.
- 주차 — 제 차(SUV)는 언제든, 차로 오시는 대표님도 등록할 수 있어야 해요. 기계식 주차는 제외예요.
- 동선 — 의정부에서 매일 다닐 수 있고, 대중교통으로 오시는 분도 어렵지 않아야 해요.
- 공간 —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곳이니 빛이 들어야 하고, 크기는 6~10평이면 충분해요.
- 비용 — 월세, 관리비, 주차비를 모두 합쳐 VAT 포함 월 100만 원 안이어야 해요.
적고 나니 꽤 까다로워 보였어요. 그래도 하나도 뺄 수가 없었어요. 컨설팅이라는 일의 방식, 제 출퇴근길, 고객의 방문 동선, 감당할 수 있는 비용에서 그대로 나온 조건이었으니까요. 기준이 까다로운 게 아니라, 일의 구조가 그 기준을 요구한 거예요.
기준이 분명해지니 '잠실을 고집할 이유'도 사라졌어요. 그날 저녁 다른 지역 매물을 직접 찾아 추렸고, 다음 날 중개사님께 함께 보러 가자고 했어요. 그렇게 찾은 곳이 천호역 근처, 지어진 지 2년 된 복합 건물이에요.
작지만 창이 커서 답답하지 않았고, 조명과 바닥, 벽까지 손댈 곳이 없었어요. 인테리어에 따로 시간과 돈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신축은 취향이 아니라 비용의 문제였어요. 화장실이 바깥에 있는 건 아쉬웠지만, 우선순위를 정해 둔 덕분에 흔들리지 않았어요.
계약 전에는 보증금과 월세, 부가세를 더한 실제 임대료, 그동안의 관리비 평균, 계약 기간, 특약까지 하나씩 확인했어요. 특히 관리비와 주차비는 몇 번이고 다시 봤고요. 그 자리에서 계약금을 보냈고, 일주일 뒤 임대인과 만나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어요. 생각보다 손이 차분했어요. 확인할 건 이미 다 확인했으니까요.
오래 고민하면 늦게 움직이게 될까요?
6년을 고민하고 이틀 만에 계약했다고 하면 성급해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이틀은 꽤 촘촘했어요. 부동산 앱으로 후보를 훑고, 여러 곳에 전화하고, 지역을 몇 군데로 좁혀 직접 걸어 다녔어요. 사진 대신 현장에서 창의 방향과 주차장의 여유를 봤고요.
예전에 받은 강점 검사에서 '심사숙고'와 '행동'이 나란히 가장 높게 나온 적이 있어요. 그때는 그냥 넘겼는데, 이번에 그 조합이 무슨 뜻인지 알았어요. 충분히 생각해 둔 사람은 때가 오면 오히려 빨리 움직일 수 있어요. 고민이 이미 끝나 있으니 망설일 일이 줄어드는 거죠.
막연한 불안은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계약을 마치고 며칠은 잠을 설쳤어요. 숫자는 감당할 만한 수준이었지만, 이제 매달 1일이면 어김없이 빠져나간다는 사실이 무겁게 느껴졌어요.
이럴 때 제가 쓰는 방법은 불안을 덩어리째 두지 않고 쪼개서 이름을 붙이는 거예요. 정리해 보니 네 가지였고, 각각 다른 방식으로 다룰 수 있었어요.
| 무엇이 불안했나 | 어떻게 다루기로 했나 | |
|---|---|---|
| 고정비 | 매달 나가는 월세와 관리비 | 필요한 최소 매출과 컨설팅 건수를 계산하고, 매일 쌓아 온 운영 기록으로 확인해요 |
| 지속 가능성 | 5년, 10년 뒤에도 이 일이 이어질지 | 정답은 없지만, 변화에 맞춰 컨설팅을 바꿔 온 6년의 이력을 믿어요 |
| 정체성 | 본업이라는 안전망이 사라진 것 | 보험이 없어진 만큼, 이제 이 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고 받아들여요 |
| 외로움 | 혼자 출근하고 혼자 점심 먹는 하루 | 가까운 대표님들과 정기적으로 만나는 자리를 만들어요 |
이렇게 나눠 놓고 나니 불안은 더 이상 막연하지 않았어요. 해결할 일의 목록이 됐죠. 무엇이 두려운지, 왜 두려운지, 그 일이 실제로 생기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이 세 가지를 묻고 나면 대부분의 걱정은 손에 잡히는 크기로 줄어들어요.
돌아보면 불안 덕분에 더 꼼꼼해질 수 있었어요. 조건을 일곱 줄로 적은 것도, 계약서를 몇 번이고 다시 읽은 것도 불안이 '한 번 더 확인하라'고 알려 줬기 때문이에요. 대표님들의 흩어진 업무를 꺼내 이름을 붙이고 자리를 정해 드리는 일과, 사실 같은 방식이에요.
이 사무실은 누구 덕분에 생겼을까요?
사무실이 없던 시절, 선뜻 자리를 내어 주신 대표님들이 계셨어요. 회의실을 통째로 비워 주신 분, 책상 한쪽을 내어 주신 분, 먼저 찾아와 주신 분. 그분들이 없었다면 6년을 이어 올 수 없었을 거예요.
매번 바뀌는 장소를 불평 없이 따라와 주신 고객 대표님들께도 감사드려요. 시끄러운 카페에서도, 낯선 회의실에서도 함께해 주신 덕분에 컨설팅은 결국 신뢰로 이어지는 일이라는 걸 배웠어요. 이 자리를 혼자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일은 오래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요.
6년이 남긴 세 가지
- 바쁜 것과 성실한 것은 다르다. 나를 돌보는 일은 사치가 아니라, 이 일을 오래 하기 위한 책임이에요.
- 불안은 미리 확인하라는 신호다. 쪼개서 이름을 붙이면 다룰 수 있는 일이 돼요.
- 받은 도움을 기억한다. 그게 교만해지지 않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에요.
이제 킵코드는 이동하며 컨설팅하던 시간을 지나, 한자리에서 대표님들을 맞이해요. 마주 앉아 업무를 꺼내 놓고, 함께 구조를 그리는 일을 이 작은 방에서 이어 가려고 해요. 대표님께도 오래 미뤄 왔지만, 사실 기준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결정이 있으신가요?
당신의 기록으로 성장을 이끄는,
킵코드 대표 이주희
